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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인권 단원에서 그걸로 수업해요?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좀 치우쳤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도 그런 걱정을 했다. ‘우리 주변의 인권침해’라는 큰 주제 가운데 하필 어른들의 문제를, 그것도 불법촬영 범죄를 골라 수업하는 게 적절할까. 그러던 중 최근 3년간 초·중·고 교내에서 적발된 불법촬영 건수가 무려 1000건에 달한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다. 열 명 가운데 일곱은 같은 반 친구 엉덩이를 찍고, 셋은 선생님 치마 속을 찍는단다. 불법촬영 범죄의 1/5은 초등학교에서 일어났다. 불법촬영은 더 이상 어른들만의 이슈가 아니었다.
아이들 세상은 어른들 사회와 완전히 격리될 수 없다. 호기심이라는 미명 하에, 위험한 것일수록 아이들에게로 빨리 흘러들어 간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스로 판단할 힘을 길러주는 편이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자 공중 화장실 문과 벽에 무수히 난 작은 구멍들을 보여주며 수업을 시작했다. 단추, 넥타이, 안경도 카메라일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경악했다. 화장실, 지하철처럼 일상적인 공간에서 ‘나 몰래 내가 찍힌다’는 건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피하겠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아이들 모두가 절감했다.
아이들이 가장 끔찍해 한 건 디지털성범죄 특성상 끝도 없이 복제돼 ‘완전 삭제’가 어렵다는 점, 그렇게 복제되는 동안 당사자는 그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접하던 ‘몰카, 야동’이라는 단어가 ‘범죄 가해’ 상황에 비해 너무 가볍고 ‘유머러스’하게까지 다뤄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자못 진지해졌다. 수업 초반에는 호기심이 경각심을 누르지 않도록 애썼는데, 아이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부터는 나도 안심이 됐다.
뒤이어, 법과 제도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퀴즈 형식으로 점검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헷갈려 한 질문은 ‘저는 찍지 않고 다운로드만 받아서 시청했는데 이것도 범죄인가요?’였다. 현재까진 범죄가 아니지만 보는 것도 범죄라는 인식이 점차 퍼지는 중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찍는 건 범죄인데, 그걸 보는 건 왜 범죄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막 퍼지는 거죠.” 아이들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인가 보다.
피해자의 입장을 들려주는 영상자료를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다 ‘학급공동실천서약서’를 쓰기로 했다. 영상자료의 피해자는 모두 여자이고, 찍는 사람은 남편, 전 남자친구, 길거리 아저씨였기에 남학생들이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고 여길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상식’은 내 우려를 한 번 더 벗어났다.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내가 피해자가 된다면’에 이입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서약서에 스스럼없이 ‘불법촬영 영상물은 찍지도, 보지도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종종 우리는 ‘차단’을 선택하지만 그건 좋은 해결책도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은 방법이다. 나는 어쩌면 불법촬영을 아이들한테 ‘소개’한 꼴이지만, 이 수업으로 아이들에겐 미약하게나마 ‘백신’이 생겼을 거라고 믿는다. 후에 불법촬영을 접하게 될 때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제동이 걸릴 것이기에,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울 거라고 기대해 본다. 황고운(초등젠더교육연구회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서해문집)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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